여행 후기
2023년 1월 | 우연처럼 시작해 필연처럼 남은 20일간의 유럽여행
이용준
2026. 9. 25 · 조회 오늘 0 · 전체 0 · 댓글 0
## 이전 이야기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나는 설렘과 떨림을 안고 여행을 시작했다.
파리에서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뉘른베르크를 거쳐 체코에 입성해 프라하 시내를 즐겼다. 그리곤 리디체와 다하우에서 역사와 미래에 대해 고민해보며 맥주의 도시 뮌헨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3일간 그곳에서 머물며 황금빛을 내는 다양한 것들을 구경하고, 한편으로는 맛있는 것들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
**스위스로 향하는 코우치에 탑승했다.**
가보자고~~!!
사소한 모든 순간마저도 기록으로 남겼던 여행의 후반전..!
# 두 번째 이야기
## 12일 차 | 취리히, 스위스
**10,394걸음**
###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코스로”
여행의 중반전에 들어서고 언제부터인가 그 전날 다음 날의 스케줄을 고민하는 습관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래도 그런 노력까지 들이기에는 지친 것도 있었을 것이고, 생각보다 긴 코우치 이동시간에 코스를 짜는 것도 꽤 생산적인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코스를 명확히 하기가 쉽지 않았다.
누구나 가는 유명한 명소가 한두 개밖에 없던 터라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되었고, 그나마 알아본 초콜릿 박물관은 몇 분 차이로 예약이 모두 마감되어버렸다.
그때 구글맵을 스크롤하다 우연히 발견한 **FIFA MUSEUM⚽️**
이건 또 축구 마니아로서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침 같은 조원들 중에서도 코스를 망설이는 친구들이 있길래 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박물관 후기를 보면 처음에는 티켓값이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 구경하고 나면 의외로 하나도 아깝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리고 박물관에 도착한 우리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박물관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안내받는 곳은 락커룸이다.
유명한 선수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캐비닛 중 원하는 곳에 짐을 보관할 수 있었는데, ‘Son’이라는 이름을 찾지 못한 게 왠지 모르게 조금 서운했다.
그렇게 겉옷과 짐을 보관한 뒤 1층에서 월드컵의 간단한 역사와 각 나라별 유니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반영되지 않았는지 마지막 우승국 역사에는 음바페의 사진과 함께 2018년 프랑스의 모습까지만 나와 있었다.
또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축구 황제 펠레의 사진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걸음을 멈추고 잠시 묵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격적인 관람을 위해 각 나라의 월드컵 언어들이 쓰여 있는 통로를 따라 지하로 이동했다.
월드컵에 참여했던 각 나라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축구 강국의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했다.
대한민국을 누르니 역시나 2002년 월드컵에서 안정환 선수가 헤딩하는 장면이 스크린에 나왔다.
물론 당시 세 살이었지만, 나름 월드컵을 함께 응원한 사람이라는 데 자부심을 느껴본다.
이어지는 공간도 월드컵과 관련된 정보와 이미지로 가득했는데, 특히 여럿이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가 잘 갖춰져 있던 것이 좋았다.
FIFA판 인생네컷에서는 최근 경기가 있었던 스타디움을 배경으로 다 같이 사진도 남길 수 있었고, 방음부스에서는 임의의 경기에 대해 각자가 아나운서와 해설자가 되어 이른바 **‘내 맘대로 중계’**를 해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같은 00년생 동갑내기 친구의 남미 국가 월드컵 골 세리머니 재현은 아직까지도 내 웃음 버튼으로 남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그 이후 관람한 월드컵 영화부터 축구의 모든 것이 담겨 있던 기념품숍까지 모든 게 좋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축구 박물관을 구글맵에서 발견한 건 우연이었을지 몰라도, 그곳에 발을 들이는 것 자체는 필연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음으로 기분 좋게 축구 기념품을 양손에 든 우리가 향한 곳은 린덴호프였다.
취리히의 호수와 시내가 아름답게 보이는 전망대.
가는 길에 구경하려 했던 성당이 일찍 문을 닫아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린덴호프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모든 사람이 그 순간을 사진으로 담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한 번 사진을 찍으려면 마치 볼링을 칠 때처럼 옆 사람과 타이밍을 보면서 찍어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남긴 또 한 번의 인생사진.
파리와 하이델베르크 이후 거의 처음으로 모든 조원이 함께 모여 단체사진도 찍으며 취리히에서 깊어가는 푸른빛 저녁을 함께 이야기했다.
또 한 번 유럽여행의 밤은 깊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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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차 | 루체른, 스위스
**13,676걸음**
### “마침내, 설산 위 주인공이 될 결심”
스위스에서의 이튿날.
가장 베일에 싸여 있던 루체른이라는 도시로 향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이곳에서의 목적지는 리기산과 빙하공원 정도로 압축되었고, 둘 중 한 곳을 다녀온 뒤 남는 시간에는 시내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려 했던 것이 원래 계획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여행은 의외의 타이밍에 틀어지는 법.**
그리고 그 방향 전환은 오히려 나에게 환상적인 하루를 선물해주는 이정표가 되었다.
오늘은 같이 간 10년 지기 친구의 조언에 따라 리기산도, 빙하공원도 아닌 **필라투스산**으로 향하게 되었다.
산 입구까지 버스를 타고 가며 또 한 번 느낀 스위스의 살인적인 물가.
버스비가 만원이 넘는 나라라니...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산 초입까지 약 10분간 걸어 올라가니 다음 교통수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케이블카였다.
케이블카의 빠른 속도와 주변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도 인상 깊었지만, 가장 신선했던 것은 산 정상까지 가기 위해 케이블카를 환승해 두 종류를 타야 한다는 점이었다.
첫 번째 아름다운 풍경은 케이블카를 환승하는 스테이션에서 만날 수 있었다.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설산과 점점 나를 둘러싸는 바위와 나무를 병풍 삼아 남긴 사진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인스타그램을 풍족하게 채워줄 만했다.
하지만,
**진짜는 정상에 따로 있었다.**
“우와... 미쳤다!”
기억하기로는 함께 정상에 오른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동시에 같은 말을 외쳤다.
어느 정도냐 하면 그야말로 **‘절경’**이라는 표현이 딱 이런 모습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특히 흔치 않은 겨울 유럽의 맑은 날씨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하얀 설산 위에서 바라보는 끝없이 펼쳐진 풍경과 적당한 바람, 그리고 그 뒤에서 우리를 향해 장렬하게 빛나던 아름다운 주황빛 태양까지.
사람이나 동물은 어떻게 서 있어도 화보였고, 사진은 무엇을 찍어도 명작이었다.
마침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 포즈를 취한 우리는 하얀 필라투스산 위에서 당당한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그리고 각자가 순백의 눈앞에서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해 나름대로의 결연한 다짐을 약속했다.
**이번 여행 최고의 장관이었던 필라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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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차 | 인터라켄, 스위스
**16,039걸음**
### “저 하늘을 날아가도 놀라지 말아요”
점점 희미해진다.
행복했던 나날들의 아름다운 기억들이...
유럽여행을 다녀와 1탄을 작성할 때만 하더라도 많은 아름다운 기억들이 생생하게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랬기에 마음속에 그려지는 생생한 추억들을 글자라는 형태로 뱉어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지도 어느새 일주일 넘게 지나 두 번째 이야기를 쓰는 무렵이 되자, 가장 찬란했던 기억들마저도 나만의 언어로 돌이켜내기 위해 제법 애를 써야 하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푸르게 빛나던 두 개의 호수 사이에서 즐겼던 인터라켄에서의 15분간의 비행은 아직까지도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오후 2시.
간단한 맥도날드 점심과 산책을 마친 우리는 본격적인 오늘의 콘텐츠인 패러글라이딩을 위해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예정된 시간까지 차량이 오지 않아 점점 초조해졌다.
아침부터 오락가락하던 빗방울 때문에 이번 여행 최고의 액티비티를 하지 못하게 될까 봐 오전부터 노심초사했기 때문이다.
“어? 저기 온다!”
다행히 조금 늦었지만 차량은 우리를 데리러 와주었고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되었다.
매장에서 명단을 확인하고 신발을 갈아 신은 뒤, 우리는 짧은 낭만을 즐기기 위해 실제 비행시간의 두 배가 넘는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산을 올라갔다.
차에서 내려 언덕을 따라 5분 정도 하이킹하니 어느새 이른바 **‘Paragliding Airport’**에 도착했다.
나름 공항이었던 만큼 생각해보면 그 떨림은 인천공항에서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가 이륙할 때 못지않게 컸던 것 같다.
카운트다운과 달리기.
그리고 마지막 힘찬 발구르기와 함께 드디어 나의 인생 첫 패러글라이딩 비행이 시작됐다.
막상 하늘 위에 떠오르니 생각했던 것만큼 불안정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편안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비행이 조금씩 진행될수록 융프라우를 포함한 아름다운 설산과 푸른 나무, 저 아래 형형색색의 마을 지붕들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아름다웠던 것은 양쪽으로 펼쳐진 두 개의 호수.
**툰호와 브리엔츠호.**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는 두 호수의 풍경은 쉽게 잊을 수 없었다.
풍경을 구경하다 보면 같이 비행하는 파일럿이 영상과 사진을 남겨준다.
이때 나중에 원본을 받아볼 수 있으니 후회 없이 영상 메시지와 사진을 남기길 바란다.
본인 같은 경우 소중한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어차피 외국인이라 남사스러운 한국말은 못 알아들을 테니..!
그렇게 가장 높은 추억을 저장하다 보면 패러글라이딩을 빙글빙글 회전시키는 마지막 이벤트를 끝으로 착륙하게 된다.
이륙과 마찬가지로 착륙 또한 안내대로만 하면 되니 안심해도 좋다.
하늘도 날아보고 기분도 좋겠다, 오늘 저녁은 스위스의 명물인 퐁듀를 먹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여전히 비싸게 느껴지는 스위스 물가와 퐁듀가 생각보다 별로였다는 친구들의 후기를 듣고선 또 한 번 동네 디저트 가게에서 허기를 달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늘 위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타며 수줍게 쏘아 올렸던 쏘니의 카메라 세리머니처럼,
**오늘 하루도 좋은 추억만을 마음속에 저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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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차 | 바젤, 스위스
**10,736걸음**
### “깊어지는 여행, 현실과 낭만의 모서리”
여느 때와 같은 아침 모임 시간.
코우치에 올라탔는데 평소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인원이 탑승해 있었다.
관광도시로 그리 유명하지 않은 바젤의 특성도 있겠지만, 숙소에 남아 하루쯤 재충전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이토록 많다는 것은 그만큼 여행이 깊어졌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갈 수 있는 모든 도시의 시내를 구경하고 싶었기에 약간은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나가기로 결정했다.
바젤 시내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코우치에서 내렸고 동물원에 함께 가자는 친구의 의견에 잠깐 솔깃하기도 했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한 뒤 시내에 있는 버거킹으로 향했다.
배가 많이 고팠냐고?
그런 것은 아니다.
비록 여행 중이긴 하지만 학업과 관련해 신경 쓸 일이 있었기에 오늘은 다른 일정을 포기한 채 **교환학생과 관련된 정보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제출하는 것**에 힘을 쏟았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교환학생 지원 시기였다.
복학 후 그다음 학기에 원하는 곳으로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서는 정해진 기간까지 학교에 양식을 제출해야 했다.
다행히 누나의 도움 덕분에 여행은 올 수 있었지만 마음이 완전히 편하지는 않았다.
커피 한 잔으로 몇 시간을 버티며 웹서칭과 보이스톡을 이어가면서 현실의 미래를 대비하는 데 힘썼다.
특히 이번 여행을 통해 유럽에 대한 호감이 한층 높아진 점도 지원 국가와 대학을 결정하는 데 큰 참고가 되었다.
네덜란드와 영국, 독일 등 유럽 국가 중 인문학을 공부할 수 있는 대학들로 리스트를 추려보며 마무리했다.
여행의 막바지로 향하는 문턱에서 이렇듯 현실의 경계를 다시금 두드려본 것은 오히려 나에게 좋은 반환점이 되었다.
시작한 지 열흘도 넘은 여행 속에서 생길 수 있는 약간의 관성적인 안일함까지 떨쳐버릴 수 있는,
쉽게 말해
**‘남은 여행을 더 소중하게 여겨야겠다.’**
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교훈을 실천으로 옮긴 가장 즐거웠던 날의 체험을 바로 다음 날 콜마르에서 실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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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차 | 콜마르, 프랑스
**14,275걸음**
### “준 현지인이 되어 우리만의 영화를 찍다”
나에게는 가족 톡방이 있다.
대한민국의 많은 가족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원래도 화목한 우리 가족의 특성상 톡방에서 소통이 활발한 편이지만, 특히 집에서 멀리 떨어져 타지에 있을 때면 무언가 더 애틋해진다.
이번 여행에서도 매일 아침 9시는 내가 톡파원이 되어 전날의 일화를 브리핑하는 일종의 뉴스 시간이었다.
여행을 떠난 지 십여 일이 지났을 무렵, 그런 톡방에서 나의 이야기와 사진을 접한 아버지가 느긋하지만 날카롭게 내게 던진 질문이 하나 있었다.
> **“해당 나라 사람, 상인 또는 기타 주변인의 삶, 가정식 등 한 끼라도 해야 진정한 체험이 되지 않을까.”**
>
> **“기계처럼 짜인 것은... 그래도 도난은 늘 조심.”**
내 식대로 해석하자면,
**“그래서 남들이 다 하는 정해진 길 말고, 너희만이 할 수 있는 것들 중 도전해본 것이 있니?”**
라는 질문처럼 들렸다.
그때까지도 그런 아버지의 말씀은 나에게 일종의 기분 좋은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다른 때와는 조금 다르게 다녀봐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갖고 콜마르행 코우치에 몸을 실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를 들으며 도착한 콜마르 시내.
성당을 중심으로 천천히 거닐며 둘러본 아기자기한 건물들은 마치 애니메이션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어딜 가나 보이던 도시의 상징인 황새 문양은 이곳에 놀러 온 10년 지기인 우리를 더욱 반겨주는 듯했다.
**콜마르도 식후경.**
어느덧 점심때가 다가왔기에 사람들이 식당에 차기 전에 일찍 밥부터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우리가 가려고 했던 식당이 예고 없이 문을 닫아 우리를 가로막았다.
조금 더 기다리면 문을 열 수도 있을 것 같아 잠시 고민하다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구경하면서 30분 안에 찍을 수 있는 **우리만의 단편영화 ‘콜마르 편’을 찍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오글거릴 게 뻔했지만 나와 내 친구는 딱히 할 것도 없었기에 동의했다.
오마주할 영화를 딱 하나로 선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주제는
**‘어떠한 형식의 만남도 인연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로 정했다.
여느 로맨스 영화와 비슷한 느낌의 장면을 촬영하고자 했다.
물론 아름다운 도시 여성과 멋진 성공한 남자를 다루는 그들과 달리 우리는 **‘브로맨스’**였지만... 말이다.
우연히 길을 걷다 어깨를 부딪치는 장면을 첫 번째 신으로 시작했다.
언쟁을 벌이다 서로의 목도리를 푼 뒤 각자의 목도리를 바꾸어 매주는 반전으로 이어지게 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는, 어설프지만 급하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시작하는 현대인들의 섣부름을 담았다.
그러다가도 헤어질 때에는 일말의 미련도 없이 떠나는 그들의 모습을 1분 남짓한 장면으로 풀어냈다.
그런데,
**진짜 우리만의 청춘 영화는 그다음부터 시작되었다. >.<**
미슐랭에 등장했다던 맛집에서 만족스러운 한 끼를 먹은 뒤, 쁘띠 베니스의 사진 스폿을 찾기 위해 시내를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왼쪽 시야에 들어온 동네 미용실.
장난기 가득한 우리가 이곳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1분도 지나지 않아 가위바위보가 시작됐고 순식간에 벌칙자 한 명이 결정되었다.
최후의 변명을 들을 새도 없이 바로 미용실로 들어갔다.
**완전히 로컬이었다.**
영어는 아예 통하지 않았고 번역기의 힘을 빌려 겨우겨우 커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자르기 전, 데이비드 베컴과 비슷한 외국인 사진을 보여주며 원하는 스타일을 설명했다.
미용실 원장님께서 무언가 주의사항을 말씀해주셨지만 알아들을 리 만무한 우리는 연신
**“OK, OK!”**
만 외쳤다.
한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차마 두 눈 뜨고 쳐다보기조차 미안한 광경이 펼쳐지고 말았다.
친구의 머리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났던 것.
베컴을 떠올리며 호기롭게 출발했던 머리 깎기의 여정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돌이켜보니 미용실 원장님의 주의사항은
**‘손님의 머리는 직모라 앞서 보여준 사진과 같은 스타일이 잘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라는 뉘앙스의 충고였던 것 같다.
단순히 머릿결이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던 우리로서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본인을 제외한 모두는 그의 독특한 비주얼 덕분에 하루 종일 웃으며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름의 앞글자가 같다는 이유로 여행 내내 ‘차은우’라는 프레임에 갇혀 살아가던 그는 화끈한 변신 뒤 더욱 높아진 인기를 실감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온몸으로 체감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그의 눈가에는 촉촉함이 묻어났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다른 친구들 중에는 콜마르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조금 심심하게 시간을 보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오늘 하루 우리도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씀을 교훈 삼고자 했던 나의 마음가짐과 오래된 친구들과의 호흡, 그리고 우리에게 다가온 우연까지 더해지니 그 어느 때보다 영화 같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남들이 정해놓은 여행 코스를 따라가는 대신 우리만의 장면을 만들었던 하루.**
돌이켜보면 콜마르에서 찍은 진짜 영화는 카메라 속 1분짜리 단편영화가 아니라, 계획에도 없던 일들을 함께 벌이며 웃었던 **우리의 하루 자체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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