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후기
2022년 7월 | 예상치 못한 코로나도 막지 못한, 혼자서 더 많이 배운 유럽여행
이해든
2026. 9. 11 · 조회 오늘 0 · 전체 1 · 댓글 0
7월에 다녀온 유럽 여행! 중간에 코로나 확진이 되어서 아쉬움도 많이 남았지만 또 그만큼 즐겁기도 했다. 여행 중 쓴 일기들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후기를 썼는데, 쓰는 와중에도 기억이 새록새록 나서 쓰는 것도 재밌었다.
1. 인천에서 파리까지
아침 7시에 공항에 도착했다. 가족 없이 나 혼자,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해외로 가는 건 처음이라 떨리기도 하고 긴장도 되고... 사실 제때 눈 뜰 자신이 없어서 그 전날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밤을 샌 상태였다. 줌 회의로만 봤었던 우리 1조와 어색하게 인사하고... 밥 먹으면서 조금씩 친해지고 그랬다.
공항에는 사람이 없었다. 평소라면 1시간 이상 걸렸을 탑승 수속이 15분만에 끝났다. 탑승 수속을 밟으면서는 조금 긴장했다가, 줄을 기다리는 동안 그게 지겨움으로 바뀌고, 아주 잠깐 집에 가고싶다고 생각했다가... 아무튼 그랬다.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기내식을 줬는데 나는 기절잠 하느라 못 먹었다.
그 다음으로는 비행의 권태에 시달렸다. 의자가 엄청 뻑뻑해서 조금 눕히는데 온 힘을 다 쓴 것 같았다. 그나마 이어폰이랑 콜라가 있어서 좋았다. 원래 귀에 물 먹은 느낌이라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안 썼는데, 비행기 소음을 기막히게 잡아준다. 콜라는 그냥 원래 최고다. 첫 모금에 깨달았다. 눈도 입도 탱탱 붓고 귀는 먹먹하고, 온몸은 삐그덕거려 온통 멍하고 둔한 감각의 비행에서 달콤하고 톡 쏘는 강렬한 자극은... 콜라 최고.
비행 11시간 째, 드디어 기내식을 받았다. 구성은 샐러드와 파스타, 빵과 버터, 과일. 기대가 워낙 없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나았다. 특히 과일이 괜찮았다. 달고 시원하고 신선하고. 하늘 위에서 누리기 좋은 호사라고 생각했다.
파리로 가기 위해 경유한 바르샤바. 볕은 따뜻한데 습하지도 않고, 날씨도 온도도 최고였다. 쇼팽 공항은 작지만 깔끔했다. 인천과는 달리 주위에 온통 수목이 울창하다. 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해서 좋았다.
잠깐 기다리다 보니 또 금방 날 때가 됐다. 오후 9시의 쇼팽 공항은 분홍빛 노을이 은은하게 드리워져서 아주 아름답다. 하늘에서 보는 바르샤바는 산이라고는 없는 널찍한 평야였다.
비행기 안에서 창 밖을 보면 기분이 좋다. 어렸을 때 보던 동화책 중 가족과 비행기를 타고 가던 소년이 구름 나라에 표류하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왜 그런 책이 나왔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풍경이다. 승무원 분들이 하나씩 나누어 준 블루베리 번도 맛있었다. 맛있는 거 먹으면서 멋있는 거 보기. 여행 최고.
지리한 비행 끝에 마침내 파리 상공에 도착했다. 한밤중 검은 대지 사이에 거대한 빛의 바다가 있었다. 땅이 보이기 시작한 후로 창문을 보면서 대충 어드메가 파리인지 가늠하고 있었는데, 보인 순간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곳곳에서 불꽃놀이라도 하는 건지 폭죽이 펑펑 터지고 있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우리가 도착한 7월 14일이 프랑스의 혁명 기념일이었다고 한다. 첫인상만큼은 정말 황홀했던 파리.
파리 캠핑장의 첫 인상은... 음, 많이 자연이었다. 라이트도 간간히 있고, 화장실도 상당히 멀다. 그래도 캠핑장 정비만큼은 깔끔하게 잘 되어있다는 게 느껴졌다. 한국 캠핑장처럼 사이트를 닦아 만든 건 아니지만 오히려 이편이 더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습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쾌적했다. 물론 밤에 화장실에서 사이트로 돌아가는 길에 같은 조 한경 언니와 길을 잃어서 30분 가량을 헤매긴 했지만... 그래도 헤맨 보람(?)이 있는지 그 다음부터는 길 잘 찾았다. 핸드폰도 꼭 들고 다녔다...
파리에서의 본격적인 첫날. 짧은 오리엔테이션 후에 장을 보러 갔다. 캠핑장에서 시내로 나오려면 넓은 농경지대와 예쁘장한 구시가지를 지나게 된다. 차창 밖을 보고 있으면 커다란 성도 하나 볼 수 있다. 정말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봤던 목가적인 서양식 주택들이 줄을 지어 있는데, 상당히 낭만적이고 예쁘다. 어딜 봐도 산이나 아파트 없이 탁 트여 있는 풍경이야말로 이국의 상징이 아닐까.
마트 캐셔 분과 영어가 전혀 안 통해서 근처 현지인 분이 영어 -> 프랑스어 -> 영어로 통역을 봐 주셨다. 시간에 쫓겨서 조장 오빠와 카트 밀고 허겁지겁 돌아다녔는데, 정작 가격 보니까 금방 행복해졌다. 한화로는 30만원까지 나올 것 같았던 양이 순식간에 105유로, 십삼만원으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났다. 나 여기서 살래.
식사 후에야 파리 인문학 여행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간 곳은 페흐라쉐즈 묘지. 페흐라쉐즈는 파리에서 가장 큰 묘소라고 한다. 프레데릭 쇼팽의 묘도 이곳에 있다고 했다. 사실 와서 부단장님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굳이 크게 애정을 가진 역사 인물이 아닌 이상에야 묘까지 방문할 이유가 있나 싶었는데, 파리 코뮌 등 생각보다 많은 역사 속 서사들을 간직한 곳이라는 걸 배웠다. 조금 들어가다 보니 나치의 수용소 희생자들을 기리는 위령비도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같은 절멸수용소는 거의 폴란드에 위치했었는데, 그 때문에 절멸수용소를 먼저 발견한 건 소련군이었다. 당시 연합군 측에서는 소련의 보도를 독일 악마화를 위한 소련의 프로파간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독일 내부까지 진격해서야 부헨발트의 가스실을 발견했다고. 페흐라쉐즈 묘역에도 다하우, 아우슈비츠 등의 네임드 수용소들의 위령비가 있었는데, 조형부터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파리 자유여행일에는 우리 1조와 함께 돌아다녔다. 현지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했는데, 전채가 꽤 인상적이었다. 새우를 얇은 피에 싼 튀김이 오래 볶은 양파와 함께 나왔다. 사실 번역 오류인지 스튜라고 생각해서 잘못 주문한 요리였지만 맛은 좋았다. 특히 양파를 볶은 소스가 은근히 춘장 느낌이 나서 괜찮았다. 식사는 꽤 오래 걸렸다. 프랑스인들의 클럽 문화는 분명 요리가 늦게 나와서 생겼을 것이다...
한동안 파리 시내를 좀 걸었다. 퐁네프 다리에서 같이 사진도 찍고, 성당들도 보고, 근처 마트도 좀 갔다가 파리의 파리바게트도 갔다. 현직 (한국) 파리바게트 알바생으로서 증언하건대 크루아상이고 마카롱이고 프랑스든 한국이든 파리바게트 제품 맛은 다 똑같다.
박물관에는 못 들어갔지만 루브르 광장도 구경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버스킹 하는 것도 봤다. 아주 좋지만 이름은 기억 안 나는 클래식 몇 곡이 지나가니 이름을 아는 곡들도 얼마 나오기 시작해서 가만 앉아서 듣기 좋았다. 여행 내내 곳곳에서 만난 버스킹 공연 역시 가장 좋았던 묘미들 중 하나였다.
3. 벨기에
파리에서 벨기에로 가는 날. 아침부터 하루 종일 차를 타고 이동했다. 브뤼셀의 캠핑장은 파리와 다르게 한껏 펼쳐진 평원에 위치해 있었다.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 흔한 나뭇가지 없이 시야가 하늘로만 가득 찬다. 한낮에야 그늘이 없어서 괴로웠지만 밤하늘만큼은 끝내줬다.
브뤼셀은 파리보다 덥다. 그나마 그늘에 들어가면 곧 서늘해졌던 파리는 이곳에 비하면 양반이다. 시내는 파리에 비해 이국적인 느낌이 적다. 곳곳에 달린 삼색기가 아니었다면 신촌인지 홍대인지 은근히 닮아 보일 정도였다. 유진이, 한경 언니와 함께 시내를 좀 돌아다니다가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거리를 구경했다. 현지인들도 우리를 구경했다. 그래도 여유롭고 낭만적이고, 기분 좋았다.
브뤼셀의 그랑플라스는 중세 유럽의 길드들이 시작되었다는 광장이다. 12세기부터 출발해서 지금의 건물들은 대략 16세기에 건조되었다고 한다. 400년 동안 돈을 아주 많이 벌었구나 싶었다. 건물들이 정말 아름다웠다. 광장에서 단장님의 해설도 들었는데, 박근혜 정권 당시의 정책 - 기업에 필요한 학과를 늘린 대학만을 지원해주던 - 과 연계된 설명도 흥미로웠다.
저녁은 단장님이 추천해주신 홍합 레스토랑에 가서 먹었다. 끝내줬다. 나는 내가 홍합을 이렇게 좋아하는지 그동안 모르고 있었다... 여행 내내 먹은 것들 중 가장 맛있었다. 같이 나온 바게트에 버터를 좀 발라서 그라탕 국물에 찍어먹으면 그냥 극락이었다. 또 먹고 싶다.
단장님의 안내에 따라 왕궁을 보러 뛰어가고, 잠깐 사진 찍고 와서 다시 예술의 언덕으로 뛰어가고... 힘들긴 했어도 나름 재미있긴 했다. 예술의 언덕에서 본 황혼도 아름다웠다. 언덕 아래에는 벨기에의 4대 국왕, 알베르 1세의 동상이 엘리자벳 왕비와 마주보고 서 있었다. 알베르 1세는 제 1차대전 당시 벨기에를 지도했다고 한다. 전후에도 국가를 잘 재건해냈다고. 설명을 들으면서 만약 알베르 1세가 1940년까지 살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어지기도 했다.
헨트 자유여행일. 여행 중 가장 더운 날이었다. 조원들과 브런치를 먹고 쇼핑조, 관광조, 카페조로 나뉘어 헨트를 구경했다. 나야 당연히 카페조다. 더위 때문인지 구글 맵으로 찾아간 카페가 두 군데나 닫혀 있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카페에서 먹은 오렌지 주스와 차이 라떼는 한국에서보다 훨씬 맛있었다. 오렌지 주스는 두 번이나 시켜 먹었다.
잠깐 들른 빈티지샵에서는 엘튼 존과 더 터틀스의 레코드판을 샀다. 둘 다 막 엄청나게 좋아하는 가수들은 아니었는데 가격이 참 착했다. 물론 오래된 거라 퀄리티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원래 바이닐은 듣는 게 아니다. 소유하는 거다... 암튼 그렇다.
헨트의 대성당도 보러 갔다. 곧 벨기에의 국경일이라더니 이곳저곳에 야외 공연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몇몇 곳에서는 소규모로나마 공연도 진행되고 있어서 짧게나마 즐기는 재미도 있었다. 의외로 시원했던 대성당 안도 좋았다. 이런 큰 성당들은 안도 멋지게 꾸며져 있어서 좋다. 다양한 조각들, 화려한 스테인리스 창문, 파란 천을 두른 성모화 등등. 성당 여기저기에 가문 엠블럼들이 엄청나게 많이 붙어 있어서 좀 신기했다. 종교가 없는 입장에서는 항상 이런 화려함이 경이롭기도 하고, 원동력이 궁금하기도 하다. 신실함? 신념? 문화? 그것도 아니면 그냥 권력일까?
4. 독일과 코로나
브뤼셀에서 하이델베르크로 이동하는 동안은 내내 잠만 잤다. 전날 고생을 좀 했으니 더위를 먹었나 싶었다. 그간 누적된 피로가 터졌는지 텐트를 치고 나서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거진 누워 있었다. 곧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온 텐트가 축축하고 꿉꿉했다. 계속 자다 깨다를 반복했는데, 당시에는 정신이 제대로 든 적이 없어서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면 이때 열이 올랐던 것 같다.
우리 조원들이 정말 많이 고생했다... 비가 그렇게 내리는데 밖에서 요리도 하고 아픈 사람들도 많이 챙겨줘서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다. 타지에서 아프면 서럽다던데, 난 우리 조 덕분에 괜찮았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목이 잔뜩 부어 있었다. 기침까지 나왔다. 부단장님께 말씀드려서 해본 자가진단키트에는 두 줄이 떴다... 다른 조원들과 텐트에 계속 함께 있는 것도 못할 짓이고 하이델베르크에선 신속항원검사나 PCR을 못 받을 것 같아서 그냥 그날 파리로 출발하기로 결심했다.
무엇보다 독일과 스위스를 제대로 돌아보지도 못한 게 정말 아쉬웠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나마 위로가 됐던 건 파리에서 잘 회복하면 비행기는 제때 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
5. 하이델베르크에서 파리까지
부단장님의 도움을 받아서 이것저것 앱을 설치하고, 차편을 예약했다. 지도상으로는 캠핑장에서 네카게문트 역까지 거리가 좀 있어서 버스 시간에 맞출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캠핑장 주인분이 역까지 차를 태워 주셨다. 자기가 해외에 나갔을 때 도움을 많이 받으셨다고 했다. 역에서 표를 사는 것도 도와주셨다.
기차를 타면 완전 새벽에 도착할 것 같아서 11시간 걸리는 버스를 타고 파리로 향했다. 네카게문트에서 맨하임으로 가서는 중앙 버스역을 찾느라 조금 헤맸다. 중앙역 옆에 버스 정류장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곳이랑 햇갈렸다. 겨우 버스에 타고... 그나마 프랑크푸르트까진 금방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버스를 한 번 갈아타서 가는 루트였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소시지를 먹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그냥 쌀이 보이는 가게로 들어갔다. 아마 아랍권 음식을 파는 곳이었던 것 같다.
물론 자스민 쌀이었다... 밥 느낌은 아니었지만 배에 쌀을 좀 넣었다는 기쁨은 있었다. 음료와 물까지 사 들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처음으로 타 본 2층 버스였는데, 사실 느낌은 그냥 1층이나 2층이나 똑같았다. 바로 뒤에 탄 남자가 브이로그를 찍는 건지 계속 카메라를 들고 혼잣말을 했다. 그렇게 8시간을 얘기하길래 좀 신기해하면서 파리로 왔다.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으면 더 재밌었을 텐데.
6. 다시 파리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막 동이 튼 직후였다. 도우미 분이 숙소까지 차를 태워주셨다. 내가 도착한 역 근처에 미테랑 도서관이 있어서 잠깐 구경도 했다. 진짜 좋았다. 펼친 책을 형상화했다는 커다란 네 건물 중앙에 있는 인공 숲도 멋졌다.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좀 많이 부러웠다.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내부는 못 보는 게 아쉬웠다.
파리에서 자가격리를 해야할 줄 알았는데 파리는 따로 격리가 없다고 설명을 들었다. 확진자들도 그냥 출근하고 많이들 놀러 간다고. 그래서 원위크 왔다고 생각하고 파리에서라도 열심히 돌아다니기로 결심했다. 도우미 분의 좀 걸어다니고 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나아서 제때 갔다는 말을 믿기로 했다.
체크인 시간까지는 좀 남아서 숙소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때웠다. 마트에서 납작복숭아랑 물, 콜라도 조금 샀다. 이 숙소의 다음 날 예약이 다 차 있대서 내일은 다른 숙소에서 보내고 3일째부터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에어비앤비로 내일 숙소를 예약하고, 입소 후에는 바로 잠들었다가, 저녁 먹고, 또 잠들었다 일어나 보니 아침이었다.
아침부터 체크아웃을 하고 파리를 좀 돌아다니다가 새 숙소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브런치 겸 들린 스타벅스. 카푸친 거리니까 카푸치노를 먹어야 하나 싶었는데 따뜻한 커피가 싫어서 그냥 핫 초콜릿 마셨다.
독일에서 내가 출발하고 한경 언니와 유진이도 확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늘은 원래 숙소로 안 돌아가니 일러도 내일에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가 처음이었는지야 모른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왠지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너무 미안했다.
그냥 목적지 없이 걸어다니다가 버스킹도 보고, 성당들도 구경하고... 계속 걷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었다. 밥을 먹을까 하다가 배가 안 고파서 관두고 새 숙소로 향했다. 구글 맵으로 서치해본 숙소 근처에는 영업일인 마트랑 식당들도 꽤 있었다. 이때 밥을 먹었어야 했는데...
새 숙소는 상당히 파리 중심부에서 멀긴 했어도 대중교통은 괜찮았다. 버스에서 내려서 체크인 하고 들어갔더니 욕조가 있어서 행복해졌다. 문제는 씻고 나와서 바로 옆 마트에 갔더니 문을 아예 닫았다는 거... 분명 인터넷에서는 영업일이었는데. 결국 비상식량으로 사둔 초코바 하나 먹고 잠을 잤다. 그나마 아이스티랑 물은 가져와서 다행이었다.
다음 날에도 마트는 안 열었고, 근처 식당들도 마찬가지였다. 1km 즈음 걸어서 도착한 주택가의 식당들도 모두 닫혀 있었다. 주말이나 공휴일도 아니었는데! 힘도 없고 그래서 그냥 바로 원래 숙소로 가기로 했다.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건 힘들긴 해도 언제든지 앉아서 쉴 수 있어서 좋다. 계속 걷다 쉬다 걷다 쉬다 그랬다.
버스에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또 버스로 갈아타야 했는데 지하철 역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다른 역에서는 필요가 없더니 내가 나가야 하는 역에서는 나갈 때 새 티켓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제 몇 개 사뒀던 티켓이 하필 그때 딱 떨어졌다. 심지어 티켓 부스도 개찰구 안에는 없었다. 역무원이랑 통화할 수 있는 버튼도 없었다... 다른 역으로 가서 티켓을 끊어 오든지, 누구한테 도움을 청하던지 하려다가 힘들어서 일단 앉았다. 잠깐 앉았던 것 같은데 3시간이 지나 있더라. 그때 한 아주머니가 표를 보여주시면서 너 이거 필요하냐고 물으셨다. 진짜 천사... 덕분에 나와서 숙소까지 갈 수 있었다. 여행 내내 여러 분들에게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다음 날부터는 천천히 파리 관광을 시작했다. 목적지를 정하진 않고 그냥 계속 돌아다녔다. 오페라 가르니에도 보고, 여기저기 보이는 성당들도 다 들어가 봤다. 뤽상부르궁이랑 샤펠 성당, 몽마르뜨 언덕 등등 여러 날에 걸쳐 많이 구경했다.
생 제르망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라뒤레를 발견했다. 마카롱 맛집이라길래 초콜릿 맛 두 개를 샀는데, 진짜 맛있었다... 먹어본 마카롱 중에 가장 꼬끄가 쫀득했다. 생 제르망 거리에서 한 식사가 좀 마음에 안 들었었는데 마카롱이 맛있어서 다 좋아졌다. 물릴 것 같아서 두 개만 사온게 아쉬웠다.
가장 좋았던 곳은 오랑주리 미술관이다. 같은 날에 갔던 오르세 미술관보다도 좋았다. 사람도 적고... 거의 모네의 수련 연작만을 위한 미술관이었는데, 그 연작들만 봐도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 볼 수 있었다. 시원하진 않았지만 덥지도 않아서 오래 있기도 좋았다. 어떻게 저런 색들을 겹쳐서 이런 커다란 형태를 만들어낼 생각을 했는지, 나와는 정말 다른 세계를 살았겠구나 싶은 느낌.
미술관 앞에는 커다란 공원도 있고, 거기 그늘에는 의자들도 잔뜩 있다. 앉으면 에펠탑까지 보인다. 그랑 팔레 박물관의 유리 천장도 멋졌다. 이곳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나중에 한번 더 방문했다. 그늘에 앉아있으면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서 나른하고 좋다.
한경 언니, 유진이와 함께 에펠탑으로도 갔다. 올라가진 않았지만 아래 공원에서 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잠깐이지만 잔디에 누워도 봤다. 날씨가 이날 정말 좋아서 숙소로 제때 갈 수만 있으면 오래오래 있고 싶었다. 조그만 키링으로만 봐 오던 에펠탑이 갑자기 눈앞에 커져서 나타나니까 그것도 새로웠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받은 신속항원검사 음성확인서. 이게 있어야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우리 1조 모두 전날에 음성확인서 다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마지막 날 저녁, 음성확인서를 손에 쥐고 유진, 한경 언니와 편한 마음으로 센 강을 돌아다니는 유람선에 올랐다. 도우미 분이 알려주신 코스였는데, 상당히 가격이 저렴하다. 마지막 시간대 배를 탔더니 에펠탑에 불이 들어오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사실 이때까지는 에펠탑을 그냥 상징적이고 커다란 철제 조형물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까 정말 아름다웠다. 왜 프랑스인들의 자랑인지 알 것 같았다. 이런 여운을 마지막 날에 남길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다.
7. 파리에서 인천까지
드골 공항에 와서야 다시 조원들과 만날 수 있었다. 계속 이동하느라 바쁘고 정신없었을 와중에 준비해준 선우 오빠와 내 생일파티는 정말 많이 감동이었다. 직접 과일로 만들어줬던 타르트도 엄청 맛있었다. 전혀 예상 못 하고 있어서 많이 놀라고 기뻤다.
다시 비행기를 타고, 바르샤바에 잠깐 내렸다가 금방 인천에 도착해 있었다. 공항에서 여러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결국 나중엔 다 해결되어서 다행이다. 인천에 도착해서 먹은 순두부찌개는 진짜 맛있었다... 정말 너무 먹고 싶었던 맛이었다. 외국에서는 못 살 체질인 것 같다. 한식 최고... 저 칼칼함이 그리웠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주 동안 얻고 돌아온 게 정말 많다. 혼자 여행을 계획했더라면 크게 관심 안 가졌을 장소들도 단장님, 부단장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기억에 오래 남게 됐다. 코로나는 아프고 힘들었지만 혼자 다니다 보니 나름의 재미도, 배운 것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소중했던 건 우리 1조. 항상 유쾌하고 착해서 같이 있으면 즐거웠던 유진이, 완전 귀엽고 재밌던 여진이, 힘든 일이나 요리도 많이 해주고 챙겨주는 것도 고맙고 멋있었던 지안이, 스스럼없이 다가와주고 말도 잘 붙여주던 윤정이, 모르는 거나 궁금한 거 물어보면 다 대답해주던 똑똑하고 멋진 한경 언니, 유심부터 시작해서 정말 많이 도움받아서 고마웠던 성진 오빠, 연장자스러움으로 든든했던 선우 오빠와 마지막으로 운전, 통솔, 해설 모두 다 최고셨던 단장님까지. 출발 전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은 여행이었고 기회만 된다면 언제든 다시 참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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