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후기
2023년 8월 I 스물둘, 함께여서 아름다웠던 유럽
집에가는고양이
2026. 9. 30 · 조회 오늘 0 · 전체 0 · 댓글 0
스물 둘, 그리고 유럽
여행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 또다른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유럽 여행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해야.
이토록 사랑스럽고 행복한 여행이 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첫 숙소로 가는 길에서 보이던 밀밭이, 그리고 저 멀리까지 뻗은 구름이 얼마나 동화처럼 보였는지, 아직도 아른거린다.
마치 꿈을 꾸다 일어난 것 같다. 분명 매트 위에 침낭을 깔고 잠에 들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눈 떠보니,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짧고도 긴 여행이었다. 여행지에서는 18일이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고, 돌아온 이곳에서 바라본 그 기간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긴 18일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행을 시작한 계기는 단순했다. 학교에 붙어있던 포스터, 그걸 내 아주 친한 동기가 톡방에 올린 것이 그 계기였다. 함께 가면 어떻냐고, 빈곤한 대학생 실정에도 합리적인 가격인 데다가, 이렇게 많은 나라를 갈 수 있다는 건 너무나도 좋은 기회라고, 그렇게 설득하던 동기에게 못 말리듯 넘어가며, 그렇게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그래, 가자고 말할 때만 해도 이렇게 낭만적인 여행이 시작될 줄 몰랐다.
바닥에서 잔다고? 그 물음으로 함축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다.
이번 설카포 인문기행처럼 마치 손에 닿을 듯, 더 아른거리는 여행은 여타 여행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수많은 도시를 지나는 것을 물론이고, 캠핑을 하기 때문이다. 일상을 벗어나 자연에서 캠핑하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도시라는 것이, 혹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부락이 있었을 당시부터 유행이었을 것이다. 이 여행이 특별한 까닭은, 맞다, 바로 캠핑을 하기 때문이다. 보통 해외 여행을 생각하면 우리는 일과 시간에 도시 혹은 자연을 누비고, 그리고는 숙소에 들어와 가글하고 휴식을 취하는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캠핑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주어진 여행은 낭만을 선사했다.
언니, 낭만은 고생에서 오는 것 같아. 난 지금 너무 행복해
사랑스러운 2조 사람들 중 한 명으로부터
낭만은 고생에서 온다던 그 추천해주던 동기의 말은 이 여행에 어울리는 말이다. 꿈 같은 파리의 시내를 노닐다가, 외곽 캠핑 사이트에 돌아와서는 서로 웃고 떠들며 본 것을 이야기하며 밥을 해먹고, 다른 도시로 떠나는 날에는 텐트를 걷고, 이 모든 과정은 고되었지만, 그것 이상만큼이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해 질 녘을 바라보며 밥솥을 찾던 그 우왕좌왕한 순간도, 지글지글 익는 고기에 왁자지껄 야채를 옆에서 손질하던 순간까지도, 비를 맞으면서도 서로 농담하며 유쾌하게 텐트를 걷고 치던 그 모든 순간들이 여행이 끝난 지금 이때까지도 남아 숨쉬는 듯하다.
1. 파리, 그래 예술, 그리고 여행
처음만큼이나 중요하게 있을까? 유럽의 첫 도시가 파리라는 건 너무나도 행운이었다.
우리의 여행이라는 그 공간을 차지한 것은 캠핑뿐만이 아니다. 열 여덟 간 우리는 수많은 도시를 지나쳐오고, 지나쳐갔다. 나는 마치 첫사랑에 상사병을 앓는 아이처럼 첫 도시 파리에게 사로잡혔다. 감히 예술의 도시에 들릴 수 있느냐며 지탄받았던 에펠탑이 파리의 상징이 되었듯, 파리에 발을 들이미는 이방인으로서 나는 파리와, 그리고 그 자부심과 사랑에 빠진 듯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도시'스러운 대도시임에도 느껴지는 여유로움과 그 자부심이 특히나 나를 사로잡았다. 그들의 자부심은 도시에 발을 들인 외지인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정신적 가치였다. 그들은 그들을 사랑했고, 그들의 도시를 사랑했고, 그들의 나라를, 나아가 그들의 문화까지도 사랑했다. 그 흘러가는 물결을 보며 파리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일 것이다.
2. 스트라스부르, 하늘을 달리는 하울처럼
저 멀리 독일이 보이는 것 같아.
파리를 떠나 도착한 스트라스부르에서 가장 인상적인 기억은 성당이었다. 엘리베이터 없이 그저 걸어 올라가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빙글빙글 돌아가며 첨탑을 올라갈 때 어찌나 어지럽던지, 위에 도착하고 나서는 기진맥진해서 털썩 앉아버리던 것이 기억난다. 올라가서 본, 그 빨간 지붕들이 오목조목 먼 지평선까지 차지할 듯 말 듯 있던 것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울과 소피가 달려갈 공중의 그림은 이렇게 아름다웠겠구나, 그렇게 느꼈던 순간이었다. 낮에는 올라갔던 대성당을 밤에는 그 밑에 서서 바라보았다. 여행을 갔던 한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유럽 어딜 가든 대성당 천지인데,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은 또다른 감상을 주더라. 지치고 무감하고 둔감해진 마음에도 또다른 울림을 주는 성당이었어." 밤에 쏟아지는 그 빛덩어리들, 그 야경만큼 잊지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3. 슈투트가르트, 그곳에서 만난 어느 낯선 이방인에 대해
예술은 요일을 가리지 않아.
그래요, 그는 슬퍼하고 분노하고 불탄했을까요?
구석에서 사라져 가는 그들은 안타까워했을까요?
우리는 그를 사랑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이들을 사랑하지는 못합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마주한 뱅크시, 그의 종이조각들로부터)
내 첫 독일 도시였던 슈투트가르트는, 정말 맛있는 슈바인학센으로 그 기억을 남겼다. 슈투트가르트에서의 가장 큰 행운은 바로 당시 열렸던 뱅크시 전시회를 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장 현대예술스러운 사람이 바로 뱅크시였다. 이번 여행에서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갔지만, 뱅크시 전시회만큼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전시는 없었다. 아름다웠고, 많은 것이 담겨있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던, 혹은 않았던 문제를 예술로서 풀어내는 그 모든 모양새의 힘은 정말 아름답고 수많은 생각을 오고가게 했다. 일요일에 도착해 DM도 가지 못했을지라도 함께 갔던 모든 이 역시 뱅크시로써 슈투트가르트를 기억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너무나도 반가운 얼굴의 새 전시회가 우리에게 그렇게 도시로 남았다.
4. 인터라켄, 하늘에선 비가 내렸고 우리도 함께 흘러가듯 날아다녔어
인터라켄을 기억하느냐고 우리조-2조 사람들에게 물으면 다들 기억을 못하는 척 딴짓을 한다. 꽤나 웃긴 모양새이지만, 그만큼이나 비오는 인터라켄은 조금 어려운 기억으로 남았다. 텐트를 치는 것도 음식을 차리는 것도 비 아래에서 힘들었기 때문일까. 비 오는 인터라켄은 레저를 즐기기에 마땅치 않았지만은 그럼에도 그것이 품고 있는 자연을 그대로 내었기에, 인터라켄은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힘들고 고된 만큼이나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우산을 쓰고 고기를 구워 만들었던 스테이크도, 막 나온 퐁듀를 먹고 그 안에 와인-알코올을 감지하고 얼굴이 빨개지던 조원들의 모습도, 아이가 먹고 싶다며 찾아낸 카페에서 따뜻한 차를 시키던 모습까지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던 것 아닐까.
5. 밀라노, 나의 이탈리아, 사랑스러운 사람들에 대하여
꿈을 꾸자.
중압감에 못이긴 나머지
우리의 땅바닥이 무너져
새로운 하늘이 생기는,
그런 하늘을 나는 그런 꿈을.
[밀라노, 그 거대한 도시에서] (하늘을 품고자 한, 그 거대한 대성당 위)로부터
로마네스크가 우세한 이탈리아에서의 고딕 성당이란 되려 자존심의 형상을 띄고 있다
밀라노에 도착했을 때는 그전날 밀라노를 무자비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날이었다. 나무들이 쓰러져있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라노가 품은 여러 아름다운 건축물은 가릴 수 없었다. 다빈치 박물관도, 밀라노 미술관도. 정말 많은 이들이, 많은 기억이,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결국 기억나는 것은 밀라노 대성당-두오모 성당과 피자였다.
밀라노는 마트 물가도 가장 싸고, 음식 재료가 정말 많아서 장보는게 가장 즐거운 국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스팸을 팔지 않아 부대찌개를 먹고 싶던 우리 조원들은 여기저기 모두 헤매고 다녔던 기억도 선하기도 하다. 한인마트를 가기 위해 처음으로 지하철도 타고, 둘째날에는 숙소에서 일찍 나가기 위해 버스를 타기도 하였다. 조원들과 함께하기에 행복했던 여행이었던 것이 가장 선연히 드러났던 곳이 밀라노 아니었을까. 텐트 치고 걷는 것도 익숙해지고 음식을 위한 분업도 모두 익기 시작하며 텐트-캠핑에서의 낭만이 점점 우리를 점령하던 그런 도시가 바로 밀라노였다.
💡 피자 말고도 젤라또를 먹다가 뚝, 떨어뜨려버렸는데, 괜찮다며 바로 하나를 더 퍼준 젤라또집 직원도 있었다. 💡
잊지 못할 기억이란게 이렇게 생기는 거겠지
6. 베른, 스위스, 스, 위, 스
시계탑이 인상 깊던 베른, 하지만 저기서 정각마다 나온다는 인형 친구들은 보지 못했다.
호수, 호수, 그리고 풍경
베른에서의 그 큰 호수, 바다 같은 호수는 우리의 캠핑장과 맞닿아 있어서였을까. 호수로 기억나는 도시는 베른이다. 스위스의 수도이자 아인슈타인의 도시인 베른에서 시계탑에서 헤어져 강을 따라 걷다 베른 박물관-아인슈타인 박물관에 도착해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보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기억이 난다. 마니또 결과를 공개하던 그 순간도 기억에 남는다. 몰래 선물을 주러 애쓰던 그 동안의 모습이 스쳐보이기도 하고, 단장님의 마니또가 정말 열렬하게 기억에 남기도 해서, 그랬던 것 같다.
스위스의 수도 박물관이라 그랬던가, 스위스라는 강대국 사이에 둘러싸인 산맥에 위치한 작은 나라의 역사를 가장 실감할 수 있는 도시였다. (베른, 로잔, 인터라켄 중에서) 그 박물관에 놓여있던 옛 지도, 옛 사람들의 모습, 역사의 나열은 묘한 울림을 주었다. 스, 위, 스. 산, 위빙(용병), 산의 모습으로 보이는 한국어로 쓰는 모양새를 스위스 사람이 좋아했다는 인터넷에 돌던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했다. 스, 위, 스. 그것이 베른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단어들 아닐까.
7. 로잔, 우리의 마지막과 행복했던 캠핑생활
둘로 이루어진 도시라 생각했던, 로잔 시내
로잔인 척하는 베른-호수 사진, 로잔 공대 - 마지막이라 더더욱 애틋했어.
마지막 날. 그렇게 그날은 슬프지 않았는데, 이제서야 돌아보니 조금 슬픈 날이었던 것 같다. 햄버거를 먹으며, 감튀가 맛있다며 감탄한 기억만 있는데, 사실 그게 슬펐던 것 아닐까.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왠지 그 다음날이 되어도 계속 여행을 어딘가로 갔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예쁘게 나열된 건물들의 시내가 그 걸음이 이어질 것이라 계속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호수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던 사람들의 모습마저 선하다. 이 도시의 포인트가 아니라 사실은 숙소가 위치한 베른의 포인트일지 모른다는 바로 호수에서 수영하던 설카포x블루밍 사람들이다. 옷이 없다며 저어하다가도 뛰어들고, 혼자 물에 빠질 수 없다며 끌어당기는 사람들이 이끌려 뛰어들고, 누군가의 폰으로부터 흘러나오던 한국 노래에 흥을 타다가도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던 그 날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호수, 배, 하늘, 텐트. 그 무엇도 사랑하지 않을 것이 없었지.
파리로 돌아와 마지막 저녁을 먹고 집에 갈 준비를 하던 때에 그 비에 젖은 새벽 파리 풍경을 보며 출국장으로 옮기던 걸음이 무거웠던 것은 단순히 기념품이 무거웠던 까닭이 아니라 우리의 찐득한 미련이 붙어서 그런 것일테다.
꿈에서 깨어난 스물 둘의 기억
비행기 차창 너머로 하얗게 빛나는 태양,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코우치 차창 너머로 물든 핑크 경치
행복했냐고 물으면 당연히 행복했다. 돌아올 때는 너무도 짧았는데 여행을 다닐 적에는 그 순간이 영원하리라 생각될 때도 있었을 정도로, 너무도 행복해서 내 시간 감각이 이리갔다 저리갔다했다.
나는 유럽을 함께 갔던 모든 이들을 사랑했다. 단장님도, 부단장님도, 운영진도, 우리 조 사람들도, 모든 설카포x블루밍 여행자들도. 모두가 모두를 행복하게 한 이유이자 원동력이었던 바람 때문이야.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해가 져도, 구름이 떠나도. 항시 행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 함께였기 때문 아닐까? 참가자들의 스물, 스물 하나, 스물 둘, 나아가 모든 이십대의 추억이 아름답게 새겨졌길, 새겨졌으리라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라 짐작해본다.
유럽이 아름다운 땅이었기에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함께 한 사람들이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우리는 아름답게 맺힐 수 있었을 것이다. 유럽인문기행이 우리에게 선사해준 것이 이러한 청춘의 기록이라면 기꺼이 나는 그 18일을 온전히 사랑할 자신이 있다. 그렇게 우리의 18일은 끝이 났다. 아름답고, 푸르고, 봄같은 여름으로.
파리에서부터 막 친해지기 시작했는데, 18일을 지나 파리를 지나 다들 어딘가로 흩어진 2조
번외.
2조는 파리에서 떠날 때 그대로 헤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약속했다, 계속 연락하고 지내기로. 18일간 함께 집 짓고 밥 짓던 사이가 어디가겠냐며, 그렇게 약속했다. 여행에서 돌아온지 벌써 한달이 넘었다. 그동안 우리는 서울에서 한 번 보았고, 일주일간 매일 밤을 꼬맨틀 퍼즐 풀며 톡으로 떠들기도 했다. 지난 8월 함께 서울에서 90년대 해외 팝 가수의 노래를 감성 있게 들으며 그때를 추억하며 밤을 지샜다. 18일의 유럽에 갇힌 추억이 아니라 우리는 인문기행을 통해 평생을 이어질 추억을 얻었다.
다시, 간다면, 함께라면 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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