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후기
2019년 8월 | 한때 우리는 별을 찾았다, 이 삶에서 한 번뿐인 유럽의 순간
딥조
2026. 9. 12 · 조회 오늘 0 · 전체 0 · 댓글 0
0. 들어가며
참가한 이유에 딱히 거창한 무언가는 없었다. 그냥 전에 들었던 사회학개론에서 교수님이 대학교 시절에 한 번은 배낭여행을 가보라고 강조하셔서 아 그럼 가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영국을 한 번 꼭 가보고 싶었기도 했다. 그렇게 어디를 갈지, 어떤 것을 해볼지도 딱히 정하지 않고 무작정 출국했다.
1. 프랑스
"한때 우리는 별을 찾았다. 당신과 나, 이 삶에서 한 번뿐인 일이다."
독립 영화 <Call me by your name.>의 원작인 "그 해, 여름 손님"에 나오는 대사이다. 주인공 둘의 시간이 별이라는 단어를 붙일 만큼 특별한 순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영화에서 잡히는 이탈리아 시골은 햇살이 따사롭고, 바람따라 흔들리는 나뭇잎도 여유롭게 느껴져서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처음 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 갔던 캠핑장은 꼭 그 영화에 들어간 것 같았다. 쨍하게 내리쬐는 아침햇살, 새벽에 울려 퍼지는 새소리와 높이 선 나무들, 자동차 바퀴 자국이 팬 오솔길 옆의 벤치에 앉아 한가로이 책을 읽는 사람들. 도심지에서는, 그리고 우리나라 캠핑장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여유였다.(나중에 부단장님이 말씀해주셨는데, 유럽의 캠핑 문화는 휴식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우리나라만큼 시끌벅적하지 않다고 했다.)
지나치게 여유를 느낀 나머지 찍은 캠핑장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일정을 시작했다. 파리의 그뤼니에르 빵집에 가서 점장(이자 제빵사)님을 만나보고 이것저것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에서 치킨집을 하면 망하지는 않는다(실제로는 아니지만) 는 풍조가 있는 것처럼, 프랑스에서도 빵집을 하면 먹고 살만은 하다, 라는 풍조가 퍼져 있다는 것, 프랑스는 어떤 빵을 주로 소비하는지(개인적으로 뱅오쇼콜라가 바게트, 크로아상과 함께 가장 많이 소비되는 빵에 들어간다는 점이 신기했다. 식사나 간식으로 자주 먹는다는데 초콜릿을 간식으로만 생각해서 그걸 식사로 먹는다는 점이 생소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언론에서 빵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를 퍼뜨리며 빵의 소비가 줄고 있지만 이는 흰빵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면서 덜 구워지는 빵이 많아졌기 때문이지 프랑스의 전통 바게트인 카디숑(물, 소금, 밀가루로만 만드는 바게트. 잘 구워진 빵은 겉껍질이 딱딱한 편인데 카디숑은 한 달 묵혀두면 둔기로 쓰일 만큼 단단해진다고 한다!)은 그렇지 않다는 것들을 들었다. 전혀 다른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은 어디서나 비슷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재미있었다.
잠시 점심을 먹고 자유시간에 프랑스의 국가 신전이라고 불리는 팡테온에 다녀왔다. 윤선자 교수님의 서양문명사 산책 시간에 팡테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서 상당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기대에 부응할 만큼 멋있었다. 프랑스 공화정이 시작되기 이전에 가톨릭 성당으로 쓰이던 모습과 그 이후에 공화정의 국가 신전으로 쓰이던 이중적인 모습이 두드러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꽤 잘 알려진 편인 잔 다르크가 그 이중성의 대표격으로 쓰이는지(가톨릭에 대한 신앙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모두 가지고 있는 인물이어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잔 다르크와 관련된 벽화가 굉장히 많았는데, 그래서 타국에도 잘 알려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에는 파리의 페흐라쉐즈 묘지에 다녀왔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공동 묘지인데, 이곳에도 2차 세계 대전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있었다. 코만도스(나치 수용소에서 유대인 시체를 나르던 유대인 죄수들, 특정짓기 위해 등에 붉은 x자 표시를 달고 다녔다고 한다.)와 나치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갇히던 최초의 수용소 다하유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2차 세계 대전이 여러가지 면에서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던 전쟁이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파리의 코뮌 정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노동자들이 꾸린 노동자 정부였으나 이에 위협을 느낀 유럽 왕정들의 연합 공격에 의해 스러졌다고 했다. 서양사에 관심이 꽤 많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정보라 꽤 충격적이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도 코뮌이 있었다는 것을 많이 홍보하지 않고 쉬쉬하는 편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이렇게 내가 놓친 이야기가 아주 많을 것이란 것을 느꼈다.
2. 영국
사흘 동안의 파리 일정을 끝내고 영국으로 갔다! 가장 기대하고 있어서 페리를 탈 때부터 두근거렸다. 처음으로 느꼈던 것은 그 악명만큼 영국 요리가 맛없다는 사실이었다. 페리에서 피쉬 앤 칩스를 시켜먹었는데, 밑간을 하지 않고 기름에 절여서 튀긴 게 아닐까 싶은 맛이었다. 하지만 페리에서 내리고 런던 시내를 보게 되자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좋았다. 직선적인 형태의 건물들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프랑스의 곡선적인 장식이 많았던 건물들보다 더 마음에 들었고(양쪽 모두 고전적인 형식이긴 했다.) 내가 정말 영국에 왔구나, 싶었다. 빅벤은 공사 중이었기 때문에 기대했던 것만큼 좋진 않았지만 런던아이와 멀리서 바라본 런던탑은 정말 예뻤다.
박물관은 자연사 박물관, 대영 박물관, 그리고 내셔널 갤러리(미술관이긴 하지만)를 갔다왔다. 대영 박물관에는 다양한 문화의 예술품들이 많았다. 특히 그리스 시대의 복장에 쓰이던 장식부터, 도자기, 조각품, 그리고 뜯어온 신전의 조각상이 있었다. 특히 그리스의 판테온 거의 다 뜯어와서 방 한 쪽을 다 채운 것을 보면서 영국이 여러가지 의미(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로 굉장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영국의 국민화가 터너의 작품이 인상깊었다. 지금까지 미술에 대해 관심이 없었고, 눈요기 이상으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인간이 단순히 글만으로 그 시대의 사회에 대한 생각을 전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는 미술 작품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 같다.
영국에서 보냈던 다른 일정은 마르크스 묘지와 간담회였다. 마르크스 묘비에서 그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한국이 마르크스에 대한 시선이 부정적인 편일뿐, 유럽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영국의 대학생과 이야기할 수 있었던 간담회에서 영국인들의 브렉시트, 유로화를 쓰지 않고 파운드화를 쓰는 것, 영국의 현 상황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전혀 의문을 가지지 않던 것에서 의문을 가지고 질문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르크스에 대하여 부정적이지 않던 유럽의 인식이 떠올랐다. 나는 비주류 경제학회에서 2년간 비주류 경제학을 공부하고 마르크스를 접했음에도 그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인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요구하던 것들을 학습하면서 내 사고를 한국에 맞게 제한했던 것은 아닐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시선에 편향성이 생긴 것은 아닐까? 문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의문과 함께 영국에서의 일정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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